보험의 가치

□ 암스테르담으로 가는 아이들

창 밖에는 전날 내린 눈으로 세상이 하얗게 변해 있었다. 
그 애들이 눈에 들어온 것은 탑승한지 얼마되지 않아서였다. 건너편 창가 쪽에 불안한 얼굴로 창에다 코를 박고 누군가를 열심히 찾는 듯한 여자아이. 마치 낮잠을 자다 일어나, 찾고 있던 엄마가 없어 막 울음을 터뜨릴 듯한 그런 표정을 한 아이. 옆에는 보호자인 듯한, 그러나 엄마 같지는 않아 보이는 아가씨가 아이의 동생인 듯한 남자애를 달래고 있었다.
내 아들만한 나이였을까. 네다섯 살 정도 되어 보이는 그 아이들.
승객들을 다 태운 비행기가 이동 연결 통로를 떼어 내고 활주로로 서서히 나아갔다. 
그 때였다. 여자아이가 갑자기 울음을 터뜨렸다. 
이륙하고 안전벨트 사인이 꺼지고 나서 이내 손님들의 여권을 나눠 주랴, 기내 사용법을 가르쳐 주랴 분주히 다니느라 그 아이들의 일은 까맣게 잊어버렸다. 그리고 그제야 아직도 울음을 그치지 않은 아이의 소리를 깨달을 수 있었다 나는 맨 뒤쪽 승무원 대기실로 가 주스 한잔을 받아 들고 아이의 자리로 갔다. 몇 번이나 말을 걸어도 쳐다보지 않고 울기만 했다. 동생 손만 만지작거리며 눈물로 범벅이 된 그 아이에 대해 옆에 있던 아가씨가 들려준 이야기는 다음과 같았다.
야채장사를 하던 부모가 차 사고로 죽어 졸지에 고아가 되어버린 아이들은 4개월을 고아원에서 지내다 다행히 아동복지회를 통해 두 남매의 입양희망자가 생겨 덴마크로 가는 것이라고 했다. 
원래 삼 남매였는데 큰 오빠는 나이가 이미 8살이 되어 입양자가 원치않아 떼어놓았는데 아마도 제 오빠를 못 잊어 저러는 것일 거라고...
그러고 보니 출국수속장 앞에서 두 주먹으로 눈물을 훔치던 남자아이와 떨어지지 않으려고 발버둥치던 그 아이들이 기억났다. ‘아, 그 아이들이었구나.’부모가 살아 계신다면 한창 재롱을 피울 그 나이에 아이들은 이제 우리와는 상관없는 땅, 푸른 눈의 양부모를 만나러 비행기를 탄 것이다.
몇년전에 TV에서 본 ‘수잔 브링크의 아리랑’이라는 프로그램이 생각났다.  생활이 어려워 딸을 먼 나라로 입양시켜야만 했던, 그리고 지붕위로 날아가는 비행기 소리만 들어도 딸을 입양시킨 죄책감 때문에 눈물로 보내야 했던 생모의 통한의 세월과, 입양되어 간 후 수없이 받은 양부모의 학대와, 성장해서 겪어야 했던 수잔브링크의 고단했던 삶들이 참으로 많은 사람들을 울렸던 프로그램이었다. 한국어라고는 한마디도 할 줄 몰랐던 그녀, 할 수 있는 일이라고는 그저 부등켜 안고 울어 버리는 것 밖에 없었던 생모와의 만남. 얼마나 많은 애기를 하고 싶었을까. 배가 고파 쓰레기통에서 참외 껍질을 주워먹던 수잔을 흠씬 두들겨 패 준, 그리고 그게 맺힌 한이 되어 동생이 입양된 후 지금까지 참외를 먹지 못한다던 오빠. 물기 어린 눈으로 참외를 깍아“이제는 먹어도 돼”라며 내미는 수잔 브링크의 두 손을 작고 결국 삼십년을 참았던 오열을 쏟아 내는 오빠의 모습에 또 얼마나 많은 눈물을 흘렸던가.
희영이라는 그 아이의 오빠는 전날 아침부터 밥을 먹지 않고 울었고 희영이는 오빠의 얼굴을 손으로 쓰다듬고 “오빠 울지마, 오빠 밥 먹자”며 달래다 같이 울었다고 했다. 그 모습이 애처로워 고아원의 직원들도 울었다고 했다. 덴마크의 겨울은 우리나라 보다 훨씬 추울 것이다. 그리고 그들의 삶 또한 추울 것이다. 
좋은 옷을 입은 희영이의 동생 인철이는 그저 즐거운가 보다. 우는 누나를 쳐다보다 승무원이 가져다 준 장난감에 정신이 팔려 혼자서 놀더니 이제 곤하게 자고 있다. 누나의 손만은 놓지 않은 채. 그러나 도착할 때면 알게 될 것이다. 바뀐 것은 옷만이 아니라 그들의 인생도 마찬가지라는 것을... 
그리고 많은 날을 울게 될 것이다. 그들이 살아가야 할 그 곳은 더 이상 칭얼데다 만져 보는 엄마의 젖꼭지도, 해질녘 동네 놀이터에서 일 나간 아빠를 함께 기다려 주던 형도, 칭얼대는 응석을 받아 줄 할아버지와 할머니가 없는 곳이란 것을 깨닫게 되면... 더 이상 푸른 땅, 진달래 피는 곳이 아니라 푸른 눈, 금발머리 속에서 언제나 이방인으로 살아가야 한다는 사실을  깨닫게 되면, 그리고 울음을 그치게 

□ 세상에서 가장 맛있는 라면